BLOG ARTICLE 쩔은 생각 | 54 ARTICLE FOUND

  1. 2012.02.18 마흔 넷 1
  2. 2011.12.13 올해도 가는구나...
  3. 2011.08.22 나는 가수다
  4. 2010.07.16 기록을 위한 노트와 위키
  5. 2010.05.03 티스토리로 복귀 8
  6. 2010.04.25 인상 2
  7. 2010.03.01 류비셰프의 삶
  8. 2010.01.25 남자의 자격 - 지리산 등산
  9. 2010.01.13 선생님이란 호칭 4
  10. 2009.12.14 걷기와 생각

마흔 넷

쩔은 생각 2012. 2. 18. 11:38
마흔 넷이면 내가 천직으로 알고 있는 분야에서 막연히 장인급 실력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20대 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말 할 자신이 없다. 이것이 가장 슬프다.

마흔 넷이면 세상을 이해하고 통찰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궁금하고 헤깔리고 모르는 것 투성이고 새로이 아는 것이 더 많은지 잊어 버리는 것이 더 많은지 모르겠다.

마흔 넷이면 나이에서 오는 여유로 온화하고 인자해지고 공자님 말씀처럼 혹하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천성은 변하기 어렵다는 것만 알게 되었고 더 경박해졌다.

마흔 넷이면 노부모께는 효자이며 자식에겐 존경 받는 아버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늘 물가에 내놓은 불안한 자식이고 아이에겐 본 받을 것 없는 철없는 아빠다.

마흔 넷이면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주위에 베풀면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숫자와는 별개로 마음은 점점 더 궁색해진다. 

마흔 넷이면 인생을 정리해가는 나이인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되어보니 아직도 살 날과 변화할 수 있는 날들이 꽤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마흔 넷... 열일곱과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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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만두를 해서 쪄서도 먹고 만두국으로도 해서 먹었다. 집에선 하숙생 스타일이지만 요샌 그래도 만두를 빚고 있으면 거들기도 한다.
날씨가 쌀쌀해져 집에서 만두국이나 김치국밥을 먹을때면 늘 다시 겨울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온다고 하니 어느집 가훈인 'Winter is coming'이 생각난다. 이젠 5부도 번역되어 나올때가 슬슬 된 것 같은데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읽은지도 오래되서 연결이나 될련지 모르겠다. 그 많은 양을 다시 읽을 수도 없고...

올 한해도 돌아보면 역시나 후회와 아쉬움만 가득하다. 하긴 어느 한해 안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섯다로 치면 내년에는 내 인생에서 4번째 맞는 땡이다. 38광땡도 그냥 지나갔는데 고작 땡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돌이켜 보면 땡이 되는 해에는 계속 나름 큰 변화가 있기는 했다. 뻔할 것은 알지만 그런 이유로 또 내년을 기다리고 기대해 본다. 그런 의미라도 두지 않으면 이제 중년에서 노년으로 간다는 의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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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쩔은 생각 2011. 8. 22. 21:59
TV는 끊고 산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매주 일요일 저녁이 되면 마루에서 TV를 보며 저녁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머니가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푹 빠지셨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중에 어머님이 아시는 곡은 많지가 않다. 그렇지만 노래를 잘부르는 가수들이 혼신을 다하여 부르는 모습과 노래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내 세대에는 20,30대에 보았던 익숙한 가수들이 많이나온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노래를 그렇게 긴장한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부르는 모습은 처음 본다. 처음에는 밥만 먹고 바로 일어났지만 나도 점점 프로가 끝날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게되었다.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한 분야에서 어느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는다. 나가수로 인해 2년 가까이 전화로서 기능에만 충실했던 아이폰에도 종종 이어폰이 꽂히게 되었다.

어제는 인순이가 처음 나왔다. 나이도 있으시고 이런 프로그램에 적응하실 수는 있을까? 까마득한 후배들 앞에서 혹시나 망신이나 당하시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자신감있고 당당하게 보여주신 그 관록의 무대와 노래는 감동적이었다. 한 분야에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멋진 대선배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나도 이제 불혹을 넘은 나이. 뒤따라오는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저런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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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근 나갈때 사용할 노트가 하나 필요해서 몰스킨 노트를 구입했다. 200년전부터 반 고흐니 유명인물들이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현재의 몰스킨을 생산하는 회사는 생긴지 십수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에서 나온 몰스킨 노트가 수십년의 시간이 지나 엉뚱하게도 이탈리아의 회사에서 다시 시작되게 되었다.

이런 사실과 비합리적인 가격을 떠나 한번 진품(?)을 사용이나 한번 해보자 해서 구입을 했다. 중국에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기존에 쓰던것들과는 달리 꼼꼼하게 잘 만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냥 노트일뿐. 몰스킨이란 상표에 애착이 있지 않는 한 가격에 비해서는 별 장점이 없는 것 같다. 만년필로 멋진 펜글씨체와 함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한테나 어울릴까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 저렴한 가격에 부담없이 쓸 수 있는 노란 바탕에 줄이 있는 옥스포드의 프로 패드 A5 노트가 딱인 것 같다.

언제인가 한 다큐에서 일본 작가가 동경대에 합격한 학생들이 사용했던 노트들을 분석해보고 이들의 노트들이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해 '동경대 노트북'이란 것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관련된 책과 이 노트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이  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일정한 간격으로 점이 있어 들여쓰기나 도형등을 쉽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세심하고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인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흐름이나 이해보다는 단편적인 내용이나 단어를 암기하는데 치중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론 노트 필기에 지나친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노트는 괴발개발 갈겨써야 제 맛.

요즘은 정리나 참고를 하기위한 내용은 위키에 기록을 하고 있다. 처음엔 간단한 메모를 위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프로젝트 관리, 독서 목록, 계획, 링크, 코드 스나이핑, 위시 리스트등 기록이 필요한 대부분의 영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변경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간편하게 글을 작성할 수 있다는 위키 특유의 장점과 다른 인터넷 문서 툴들과는 달리 과한 자바스크립트가 없기 때문에 많은 플랫폼에서 접근하기 쉽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위키는 협업을 위해 탄생한 툴이지만 개인적인 기록 보관소의 용도로 사용하기에도 매우 좋은 툴인 것 같다. 스마트폰과 함께라면 언제 어느곳에서나 기록하고 열람할 수 있어 믿음직 스럽다. 직접 쓰는 손맛도 놓칠 수가 없으니 노트에서 가볍게 쓰고 위키에서 정리하는 것이 내게 맞는 기록 방법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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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텍스트큐브로 옮겼던 이 블로그를 다시 티스토리로 이전 시켰다.  텍스트큐브 서비스는 중지하고 구글의 블로거로 통합된다는 공지사항을 보고 바로 옮기기로 했다. 조강지처를 버리면 벌 받는다고 하더니 옮긴지 1년만에 난민이 될지는 몰랐다.

이 블로그를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먼 미래를 위해서다. 내가 나이가 들어 오래전 과거에는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보냈는지 돌이켜볼 수 있는 오래된 앨범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더 지나서는 내가 죽은 후에 내 아들과 손주들이 나를 추억해 보고 알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거창한(?) 목표도 있다. 그러니 이 블로그는 살아서는 나의 일기장이요, 죽어서는 나의 묘지일 수 있겠다. 조상의 묘에 성묘를 하듯 앞으로는 고인의 블로그를 관리해 주는 것이 자손들이 해야할 의무가 될 수도 있겠다. 추석때면 컴퓨터에 앉아 선대의 블로그를 벌초를 하듯이 광고성 댓글들을 삭제하고 도메인과 블로그를 확인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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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쩔은 생각 2010. 4. 25. 15:02
초등학교 시절 졸업사진을 위해 찍은 증명사진이다. 한 30년전 사진인 듯 한데 이 사진을 본 아이가 '아빠는 이때부터 눈이 이랬네'라며 한마디 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 덩치도 좋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녀석들이 많아 난 늘 내 인상이 괜찮다는 착각속에 한동안을 살아 왔다.

대학에 들어가니 간혹 인상이 차갑다는 소리를 하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친구들도 많고 술자리도 많이 가고 마시다 실수도 하고 매사에 덜렁덜렁인 나에게 차갑단 소리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잘 못 봤다라고 일축했다. 결혼후에는 집사람은 '넌 눈빛이 안좋아'라고 틈만 나면 공격해 들어 오고 만나는 사람들도 눈빛이 좀 쎄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간혹 하였다. 요 근래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어떤 분은 '형사 인상'이란 치명적인 말까지 했다. 형사들이야 범인을 쫓는라 포식동물의 눈빛이 된다 치더라도 모니터에서 버그나 쫓는 내 눈빛이 왜 이럴까 심각하게 반성을 해봐야 할 시점이 왔다.

링컨은 나이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런면에선 난 지금까지 실패인 것 같다. 여유 없는 치열한 마음으로 온화한 성품과 타인에 대한 깊은 배려와 관심이 부족한 것이 원인인 듯 하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스럽고 화가난 표정보다는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것이 바로 되자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니 난감하다. 불교에는 무채칠시란 말이 있다. 출처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세계의 종교란 책을 보면 아래와 같이 나와있다.

무채칠시 (無財七施)

하루는 어떤 이가 석가모니를 찾아가 호소를 했다. "저는 하는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무슨 이유입니까?" 석가는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빈 털털이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렇지 않다면 "아무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7가지는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가르침이다.

  • 화안시: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표정으로 남을 대하는 것
  • 언시: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양보의 말, 부드러운 말로 남에게 베푸는 것
  • 심시: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따뜻함을 나눠 주는 것
  • 안시: 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
  • 신시: 몸이 수고하여 베푸는 것으로 남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다거나 어려운 일을 돕 는 것
  • 좌시: 때와 장소에 맞게 편안하고 좋은 자리를 내주어 양보하는 것
  • 찰시: 사람들이 묻기 전에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그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도와주는 것

듣기에는 참 좋은 말씀 같고 인상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천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그냥 간혹 한번씩이라도 기억은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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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전 여러 프로젝트와 자잘한 유지보수로 무척이나 바쁠무렵에 시간의 부족함을 몹시 느꼈다. 일에 쫓기듯이 작업을 하면서 문득 20대에 읽었던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란 책이 생각났다. 나중에 구입을 위해 검색을 해보니 이 책은 '시간을 정복한 남자'란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이책의 주인공인 류비세프와는 달리 시간을 흘린 맥주보다 우습게 아는 난 두주나 흘려보낸 오늘에서야 읽게되었다.

늘 자신이 쓴 시간을 기록하고, 통계를 내고, 다시 계획하면서 1분도 허비하지 않고 살려고 한 류비셰프. 오래전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존경스러운 점은 많지만 절대 이렇게까지 빡빡하게 자신을 몰아 붙이면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변함이 없는 것은 좋은데 너무 버리듯이 살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저자는 줄곧 류비세프가 위인일까? 위대한 과학자일까? 본받아야할 위인일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일생동안 70여권의 서적을 집필하고 1만2천5백여장에 달하는 논문과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썼지만 그는 유명한 과학자는 아니였다. 사실 그는 그 '유명'과 현실적 이익을 피하고 철저하게 본인이 흥미롭고 가치있어 하는 일에만 집중하며 살다 간 것 같다. 보통 부와 유명세는 현실과의 타협을 뜻하며 진정한 자유를 빼앗아 간다. 필요한 것을 넘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불필요한 근심과 낭비를 야기한다.

그가 추구했던 것은 순수한 학문 그 자체였다. 지식을 얻고, 논문을 쓰고, 관찰을 하고, 토론을 하고, 주장을 하는 것이 목적이였고 그외에 과학계나 다른사람들의 평가와 경제적인 이익, 명성등은 그 목적을 위해 철저히 무시되었다. 성과는 안중에 없이 본인의 호기심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수학, 생물학, 유전학, 철학, 문학, 종교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그리고 그는 순수한 목적이든 아니든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그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의견, 방대한 자료들을 아무 댓가없이 제공해주었다. 마치 요즘 세상에서 블로그를 하듯이 그는 끊임없이 알아낸 사실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준 것이다. 수익을 위한 광고를 달지도 않고, 블로그가 노출이 되든지 안되든지, 글을 누가 보던지 말던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직 기록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년은 연금으로 생계를 간신히 유지하며 살아갔지만 분명히 본인은 삶에 충실하고 만족한 인생을 살았고 그로인해 행복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평가가 무엇이 중요한가? 명성과 부를 멀리하여 철저하게 본인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고 주어진 시간을 존중하며 멋진 인생을 살다 가셨다. 하지만 역사는 대부분 전자를 추구한 위인들이라 불리우는 사람들만 기록 해준다. 그렇기때문에 잔잔하고 평온하지만 도덕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산 류비세프의 삶을 기록한 이 책은 신선한 위인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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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는 거의 안보지만 지인으로부터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에서 지리산 종주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챙겨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방영일인 어제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티비를 보았다. 보는 내내 쇼핑중독자가 홈쇼핑 프로를 보며 안절부절하듯 당장이라도 짐을 꾸려 떠나고 싶은 충동이 수시로 들었다. 안그래도 요새는 일때문에 동네 앞산도 못가고 있는 처지라 지리산의 설경과 시리도록 파란하늘은 염장을 제대로 질렀다.

옷과 장비들을 보니 일요일 아침에 하는 영상앨범 산에서도 자주 나오는 메이커로 협찬을 받은 것 같은데, 겨울산에 있어서 거의 완벽하게 장비들을 제공 받은 것 같다. 눈산이라 힘들긴 하겠지만 장비도 좋고, 거리와 시간으로 보면 그렇게 무리한 코스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이윤석이 말랐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저정도일지는 몰랐다. 무슨 장대 하나가 흐늘흐늘 거리며 위태롭게 올라가는 것을 보니 그의 몸으로서는 꽤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제작진들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재미와 함께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편안하게 집에 앉아 볼수있게 해주어서 감사한다.

그나저나 지리산을 가본지가
몇년이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오른 것은 십년도 지난 것 같고 그나마 몇년전에 노고단까지 차로 잠깐 올라가 본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언제쯤 아들녀석과 함께 시간에 구애를 안받고 느긋하게 지리산을 올라가 볼 수 있을까? 어제 방송을 보고 났더니 마음이 더욱 조급해진다. 일단은 그냥 눈앞에 놓인 일이나 열심히 하자. 다시 암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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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부터 아주 가끔 '선생님'이란 호칭을 듣는다. 주로 학교나 병원등 그런 호칭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곳과 일할때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이 일상적이고 별 의미없는 것임을 알지만, 이전엔 들어본 적도 없는 호칭이고 내겐 어울리지도 않는 것 같아 들을때마다 조금은 난감했다.

나이가 마흔을 넘자 이젠 일때문이 아닌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도 간혹 듣게 된다. 길이나 무엇을 물으러 오는 분들에게 간혹 이런 호칭을 듣는다. 젊은 사람들이나 여자들은 이런 호칭을 쓰지 않는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들이 주로 이런 호칭을 사용한다. 이젠 사회적으로 나이대접(?)을 받을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내 얼굴이 지나치게 노안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 아침도 선릉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60정도 되신 분이 오더니 '선생님, 여기가 분당가는 것 맞나요?'하고 물어 보시길래 '예, 어르신 여기서 타시면 됩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선생님, 어르신... 뭔가 이상한 조합인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사실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부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보통 나랑 비슷해 보이면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고,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들께는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이젠 나도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보다 선생님이라 불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의미상도 내가 길이나 궁금한 것을 물어 보고 답을 구할려고 하는 것이니 선생님이란 호칭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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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생각

쩔은 생각 2009. 12. 14. 14:22
저번주 토요일은 산에 있었다.
아마 근교산을 오는 분들중엔 내 나이가 젊은편에 속하는 것 같다.

다음날인 일요일은 코엑스 지하에 있었다.
아마 그곳에선 내 나이가 평균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도시 vs 산
발랄 vs 담백
젊음 vs 늙음
문화 vs 자연

여러가지 느낌들이 확연히 비교가 되었다.

일반적인 산행은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줄 자극적인 요소나 도전해볼만한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서 건강을 생각해서든 산이 좋아서든 다니는 것 같다.

내가 다니는 정도의 산행은 등산이라기 보다는 걷기에 가깝다고 생각이 든다. 운동이나 육체적 활동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명상에 가깝다. 산을 다니면서 좋은 것중 하나가 무의식적으로 걷는 것이 생각하는 것을 도와주기때문이다.

오랜 옛날부터 많은 철학자들은 걷기, 산책, 여행의 예찬자들이고 실행자들이었다.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라고 했다. 그들과 같이 훌륭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걸을때면 늘 루소가 했던 말에 동의를 하게된다.

처음은 힘들어만 하던 아이도 이젠 오르고 내리면서 무엇인가 잔뜩 생각을 하는 표정이다. 점심때 먹을 라면을 상상하는지, 집에서 하다 만 게임을 생각하는 건지, 내려가서 먹을 파전을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40이 넘어서면서 더 늙기 전에 운동이나 하나 시작해볼려고 했는데, 언제까지 유유자적 산행만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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